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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해 사랑해> 국민권익위원회 감동사례집 중

forget-me-not 2015. 3. 6. 15:40

복지시설에서 사랑을 키워 온 지적 장애인 주복(가명) 씨와 서정(가명)씨.

결혼을 약속했지만 복지시설을 관리하는 지자체에서 지적 장애인끼리 결혼하면 예기치 못한 문제가 생길 수 있다는 점과 복지시설 관리에 어려움이 예상된다며 반대했다.

 

 

 

 

 

복지시설에서 사랑을 키워간 두 사람


눈은 낮부터 내렸다. 주복 씨는 뭘 하고 있을까.

선생님이 생각해선 안 된다고 했는데 자꾸만 생각났다.

서정 씨는 자리를 박차고일어나 문 밖으로 뛰쳐나갔다. 하얀 눈이 서정 씨의 머리 위로 푹푹 쏟아졌다.

 

서정 씨는 지적장애 2등급이다. 기억력도 사고력도 보통 사람들보다 떨어진다.

소함에서 청소도구를 꺼내 방을 쓸고 닦고, 식판을 들고 줄을 서서 급식을 받고, 설거지 당번이 돌아오면 설거지를 하고, 작업시간엔 정해진 순서에 따라 풀을 칠해 봉투를 만든다.

그런 것은 할 수 있다. 서른세 살이 되도록 할 줄 아는 게 그뿐이다.

 

혼자서 주복 씨의 집을 찾아가는 일은 한 번도 해본 적이 없다.

눈이 내리지 않았다면 주복 씨 생각도 안 났을 것이다.
주복 씨는 마흔다섯 살이다. 서정 씨와 같은 지적장애 2급이다.
두 사람은 ..시에 있는 장애인복지시설에 함께 있었다. 둘은 손을 꼭 잡고 붙어 다녔다.

아침에 기상해서 소등 시간 직전까지 주복 씨는 서정 씨 곁을 떠나지 않았다.

‘사랑해, 사랑해’ 이 말 밖에 할 줄 몰랐다.


두 사람이 헤어진 건 3년 전 함께 지내던 복지시설이 문을 닫게 되면서다.

서정 씨는 희망원으로 보내졌고 주복 씨는 다가구 임대주택을 배정받아 독립하게 됐다.

헤어지는 날 두 사람은 엉엉 울었다. 주복 씨는 서정 씨를 자주 보러 왔다. 그때마다 서정 씨는 울었다.

주복 씨는 서정 씨를 달래며 속삭였다.
“100번 마을버스, 850원, 일곱 번째 버스 정류장.”
버스에서 내리면 주복 씨가 있을 것이라고 했다. 주머니에 850원도 넣어줬다.

 

 

사랑하는 주복 씨만 옆에 있으면

 

눈길을 헤치고 100번 마을버스가 도착했다. 

서정씨는 언 손으로 동전을 하나씩 꺼내 요금통에 넣었다.

버스는 정류장마다 서지 않았다.

서정 씨는 혼란스러웠다. 몇 번째 정류장인지 알 수 없었다. 세상 천지에 하얀 눈뿐이다.

눈이 오는 날 서정 씨는 프러포즈를 받았다. 주복 씨는 꽃다발과 반지도 사왔다.

서정 씨 앞에 무릎까지 꿇었다.
“서정 씨, 결혼해 주세요.”
주복 씨가 어디서 이런 걸 배웠는지 신기했다.
“네.”
서정 씨는 고개를 끄덕였다. 결혼해서 주복 씨와 같은 집에서 살고 싶었다.

 

 


 

아이도 낳고 살림도 하고 싶었다.

배우면 뭐든 잘 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주복 씨만 옆에 있으면.

뜻밖에 지방자치단체가 결혼을 반대하고 나섰다.

지적 장애인끼리 결혼하면 예기치 못한 문제가 생길 수 있고 복지시설 관리에 어려움이 예상된다는 이유였다.

그리고 양가 부모님의 결혼 승낙서를 가져오라고 했다. 서정 씨의 아버지는 딸의 결혼을 승낙했다.
하지만 주복 씨의 부모님은 모두 돌아가셨다. 누나와는 연락이 닿지 않았다.
복지사 선생님이 두 사람이 결혼할 수 없는 이유를 설명해 줬다.
서정 씨는 무슨 말인지 알아들을 수 없었다.

그저, 서정 씨는 남자를 사랑할 수도 없고, 결혼할 수도 없고, 아이를 낳아서는 더더욱 안 된다는 얘기로만 들렸다. 위험하니까.  지적 장애인이 사랑하는 건 위험한 일이라고 했다.

저 멀리 버스정류장에 우뚝 선 사람이 보였다.

서정 씨는 벌떡 일어나 버스 문을 탕탕 쳤다. 버스가 멈췄다.
주복 씨였다. 주복 씨가 약속대로 버스정류장에 서 있었다.
주복 씨는 서정 씨를 업고 집으로 갔다.

복지사 선생님이 서정 씨가 없어진 걸 알고 혹시나 싶어 주복 씨에게 전화를 했다고 했다.
주복 씨는 전화를 끊자마자 버스정류장으로 나가 내내 기다렸다고 했다.

 

사랑의 결실을 축복하는 새하얀 눈


주복 씨의 방은 따뜻했다. 주복 씨는 서정 씨가 잠이 든 후에도 발을 주물렀다.

밤새 주무르다 가슴에 껴안고 잠이 들었다.

 

다음 날 선생님이 주복 씨 집으로 찾아왔다.

서정 씨는 주복 씨와 떨어지려 하지 않았다. 주복 씨도 마찬가지였다.
“권익위에서 두 사람이 결혼할 수 있도록 도와주실 거야.”
선생님은 혼자 온 게 아니었다. 권익위 담당 조사관이 함께 왔다.
두 사람을 도울 길을 찾던 복지사가 장애인가족지원인권센터와 함께 권익위에 도움을 요청한 것이다.

“두 사람 모두 결혼할 의사가 확실한 건가요?”
조사관의 말에 주복 씨와 서정 씨가 고개를 끄덕였다. 몇 번이고 계속 끄덕였다.
“결혼은 장애와 상관없이 자기 결정에 따라 할 수 있어요. 너무 걱정하지 마세요. 도와드릴 방법을 찾아보겠습니다.”
주복 씨와 서정 씨는 서로를 꼭 껴안았다.

결혼을 허락받든, 아니든, 누가 뭐래도 떨어지지 않을 생각이었다.
주복 씨와 서정 씨가 결혼하는 날에도 눈이 내렸다.

두 사람은 결혼식을 마치고 눈길을 걸어서 집으로 왔다.

하얀 눈길에 주복 씨와 서정 씨의 발자국이 나란했다.

 

권익위는 발달 장애인 남녀의 혼인신고를 지원하도록 지방자치단체에 권고했다. 혼인의사가 명백하고, 법률상 누구든지 장애 여부와 상관없이 자기결정에 따라 혼인할 수 있으며, 자기결정권 행사에 어려움이 있는 발달 장애인에 대해서는 국가와 지자체가 적절한 의사결정 및 지원방안을 강구할 필요가 있는 점 등을 들어 지난 해 6월 두
사람의 혼인신고를 지원해주도록 이들이 거주하는 ○○시에 권고한 결과, 현재 두 사람은 결혼해서 행복하게 살고 있다.
권익위 관계자는 “발달 장애인은 결혼과 같은 일상생활이 어렵다는 인식 자체가 바뀌어야 하고, 국가와 지자체도 발달 장애인들의 권익 향상에 더 많은 관심과 배려가 필요하다”고 밝혔다.

 

 


 

국민권익위원회의 현장의 감동 이야기를 담은 사례집 '동행, 국민과 함께 걷다' 中 <사랑해 사랑해>

국민권익위원회의 실제 사례를 바탕으로 한 사례집인데 15개 이야기 중 제일 짠하게 와닿던 내용이라 개인블로그에도 포스팅

국민권익위원회, 화이팅!! ^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