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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이현 장편소설 <달콤한 나의 도시>

forget-me-not 2017. 12. 20. 19:27

 

 

 

달콤한 나의 도시 - 정이현

 

 

돌이켜보면 언제나 그래왔다. 선택이 자유가 아니라 책임의 다른 이름이라는 사실을 알게되면서부터 항상, 뭔가를 골라야 하는 상황 앞에서 나는 어쩔 줄 몰라 진땀을 흘려대곤 했다.

 

 

때론 갈팡질팡하는 내 삶에 네비게이션이라도 달렸으면 싶다. “백미터 앞 급커브 구간입니다. 주의운행하세요.” 인공위성으로 자동차 위치를 내려다보며 도로 사정을 알려주는 네비게이션 시스템처럼, 내가 가야 할 길이 좌회전인지 우회전인지 누군가 대신 정해서 딱딱 가르쳐준다면 얼마나 좋을까? 커다란 걸 바라지는 않는다. 다만 상사 뒷담화로 아침을 시작하고자 하는 직장 선배에 대해 어떤 태도를 취해야 하는지와 같은, 사소하고도 예민한 문제의 정답부터 제발 좀 알려주면 좋겠다.

 

 

모든 고백은 이기적이다.

사람들이 누군가에게 고백을 할 때, 그에게 진심을 알리고 싶은 갈망보다 제 마음의 짐을 덜고 싶다는 욕심이 더 클지도 모른다. 내가 유준을 만나러 온 이유는, 어쩌면 고백하기 위해서였다. 애정 문제와 관련된 카운슬링엔, 맑고 담담한 사이의 이성이 제격이니까.

 

 

인생을 소모한다는 느낌이 들지 않는 관계란 과연 어디에 존재하는 걸까? 그래서 사람들은 기꺼이 사랑에 몸을 던지나 보다. 순간의 충만함, 꽉 찬 것 같은 시간을 위하여. 그러나 사랑의 끝을 경험해 본 사람들은 안다. 소모하지 않는 삶을 위해 사랑을 택했지만, 반대로 시간이 지나 사랑이 깨지고 나면 삶이 가장 결정적인 방식으로 탕진되었음을 말이다. 이번 사랑에서는, 부디 나에게 그런 허망한 깨달음이 찾아오지 않았으면 좋겠다.

 

 

나이가 들어간다는 것은, 이 세상에 인간의 힘으로 이해 못할 인간의 일이 별로 없음을 알게 된다는 뜻이다. 이틀만 지나면 나는 서른 두 살이 된다. 고작 서른둘이다. 얼마나 더 살아야, 불쑥불쑥 들이닥치는 생의 불가사의에 대해 의연하게 찡긋 윙크해줄 수 있을까?

 

 

어제와 오늘이 별다르지 않았던 것처럼 오늘과 내일 사이에도 경천동지할 일 따위는 일어나지 않을 것이다. 시간에는 매듭이 없다. 그러나 사람들은 무한하게 지속되는 그 반복성이 두려워 자꾸만 시간을 인위적으로 나누고 구별 짓고 싶어 한다. 아아, 그렇게 해서라도 복잡한 현재를 깨끗이 털어버리고 맑은 새날을 맞이할 수만 있다면. 그렇다면 나는 기꺼이 맨발로 폴짝폴짝 뛰어 내일을 마중 나가겠다.

 

 

입속으로 가만히 중얼거려보았다. 안녕, 2005년.. 너는 나를 조롱했지만 나의 방식으로 나는 너를 사랑했다. 잘 가라. 내 서른한 살. 뒤돌아보지 말고.

 

 

겨우 손을 잡았을 뿐이다. 남자와 손을 잡은 것이 난생처음도 아니다. 처음이라니. 친애하는 나의 옛 연인들이 들으면 뒷목을 부여잡고 쓰러지겠다. 그런데 묘하다. 내 손을 김영수의 손 안에 파묻었을 때 느꼈던 그 단단한 감촉이 다음날까지도 뚜렷하게 남아 지워지지 않았다.

 

 

누구라도 그렇겠지만 내 어릴 때의 꿈도 이렇게 지지한 사무원으로 늙어가는 것은 아니었다. 그렇다고 딱히 특별한 꿈이 있었던 기억도 나지 않는다. 꿈. 간절히 이루고 싶은 미래, 헤엄쳐 닿고 싶은 기슭. 사람들은 모두 다 한 가지씩의 꿈을 가슴에 품고 살아가는 듯하다. 영화감독이 되고 싶은 태오, 뮤지컬배우가 되고 싶은 유희, 우거지 왕국을 세우겠다는 희망으로 부풀어 터질 것 같은 안이사도 있다. 꿈은, 인간을 생에 가뿐히 헌신하도록 만드는 기적의 동력처럼 보인다. 단 한 사람, 나의 경우를 빼면 말이다. 도무지 되고 싶은 것도, 하고 싶은 것도 없이 내 청춘은 끝나가고 있었다. 아니, 애저녁에 벌써 종 쳐버린 건가?

 

 

~ 하고 있는 남자를 나는 새삼스런 상념에 잠겨 바라보았다. 나에 대한 이 남자의 마음은 어떤 빛깔일까? ‘남들처럼!’을 인생의 캐치프레이즈로 높이 치켜들고 살아가는 사람이었다. 혹시 그는 오윤수라는 여자가 보유한 평범하기 그지없는 외적 조건들에 편안함을 느끼는 건 아닐까? 키 보통, 몸무게 보통, 얼굴 보통, 가슴 크기 보통, 옷 입는 센스 보통, 학벌 보통, 집안 사정 보통. 어딜 내놔도 튀지 않고 인파 속에 파묻히는 여자라는 점 때문에 안심하는 건 아닐까? 피장파장이었다. 나 역시 바로 그런 이유로 이 남자에게 호감을 품고 있으니까.

 

 

그러나 이메일에는 ‘수신 확인’이라는 잔인한 기능이 있었다. 발신자는 자신이 보낸 메일을 상대방이 읽었는지 아닌지 직접 확인할 수 있는 것이다. 그 기능을 처음 고안해낸 이는, 객관적으로 증명 가능한 것만을 믿는 슬픈 실증주의자임에 분명했다.

 

 

그는 알까. 미안하다는 말도 차마 하지 못하는 가난한 내 마음을.

 

 

백수, 아니 ‘자연인’의 24시간은 너무 빠르거나 너무 더디게 흐른다. 시간의 소비라는 행위만큼 주관적인 것이 또 있을까. 눈에 보이는 생산을 하지 않는다고 해서 시간을 그저 버리고 있다고 말할 수 있을까. 오늘의 계획이 ‘이효리 새 음반 듣기’거나 ‘이번 주 『씨네21』읽기’가 전부라면 왜 안 되는가. 냉정한 가치로 환원되지 않는 시간은 진정 무의미한가. 한 치의 오차도 없이 규칙적인 시계 초침 소리가 째깍째깍 방 안 가득 울려 퍼졌다. 이런 생활을 조금만 더 하다가는 현대인의 시간 관념에 대한 매우 독창적인 논문을 쓰게 되거나 아니면 폐인이 되거나, 둘 중 하나일 것만은 분명했다.

 

 

“외롭지 않아요?”

“음, 솔직히 말하면, 외로운 게 뭔지 잘 모르겠어요. 심심한 거랑 외로운 거랑 많이 다른가? 누구랑 같이 있다고 해서 꼭 외롭지 않은건 아니잖아. 은수씨는 외로워요, 혼자라는 게?”

“아니요. 꼭 그런 건 아니지만.”

그 말을 신호 삼아, 눈물 한 방울이 손등 위로 툭 떨어졌다. 남아있던 술기운이 머리 꼭대기로 확 치받혀 올랐다. 아무렇게나 떠들어대기 시작한 건, 예고 없이 쏟아지려는 눈물을 숨기고 싶어서였을 것이다.

 

 

카페모카 위에 올려진 흰 휘핑크림에 입술을 살짝 가져다 댔다. 보드랍고 달콤했다. 그가 상체를 조금 내 쪽으로 기울였다. 떨리지는 않지만 불편하지도 않다. 언제부턴가 이 사람과 함께 있으면 따뜻한 물에 맨발을 담그고 찰랑이는 것처럼 소소한 평화가 느껴진다. 30대 남녀의 만남에, 그 정도면 충분하지 않겠는가.

 

 

하나의 사랑이 완성되었다는 말은, 누군가와 영원을 기약하는 순간이 아니라 지난한 이별 여정을 통과하고 난 뒤에야 비로소 입에 올릴 수 있는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아이러니컬하게도 사랑할 때보다 어쩌면 헤어질 때, 한 인간의 밑바닥이 보다 투명하게 드러나기 때문이다. 가끔은 사랑하는 연인들보다 평화롭게 이별하는 연인들이 더 부럽다.

 

 

일주일이 ‘평일/주말’로 나눠져 있을 때는, 일요일의 무력감에 대해 알지 못했다. 매일을 일요일처럼 보내는 사람에게, 일요일은 탕수육과 자장면을 시키면 함께 따라오는 군만두처럼 느껴진다. 맛은 없으면서, 아무리 먹어도 줄어들지 않는 것이다.

 

 

넌 그 남자들 단점은 다 버리고 장점만 뽑아서 하나로 모으고 싶지? 근데 사랑은 그런 게 아니지 않냐? 진짜 사랑한다면 망설이지 않을걸. 절실하게 사랑하지도 않는 남자들 쭉 늘어놓고 문방구에서 연필 고르듯 하는 거, 난 너무 비윤리적이라고 봐.

 

 

난 적어도 이 남자 저 남자 저울질은 안 하니까. 나는 최소한 나 자신한텐 정직해. 내가 원하는 상황을 상대한테 분명히 밝히고, 내가 받아들일 수 있는 강드라인을 확실히 선언해. 그것만 지켜지면 돼. 그다음엔 아무 대가도 바라지 않아. 그럼 된 거 아니야? 사랑의 윤리에서, 솔직한 사랑 말고 또 뭐가 필요하니?

 

 

어쩌면 우리들은 사랑에 대해 저마다 한 가지씩의 개인적 불문율을 가지고 있는 건 아닐까 싶다. 문제는, 자신의 규칙을 타인에게 적용하려들 때 발생한다. 자신의 편협한 경험을 토대로 만들어진 기준을, 타인에게 들이대고 단죄하는 일이 가능할까. 사랑에 대한 나의 은밀한 윤리감각이 타인의 윤리감각과 충돌할 때, 그것을 굳이 이해시키고 이해받을 필요가 있을까. 유희가 만나는 남자가 이혼남이든 유부남이든 수도승이든 내가 터치하지 않는 것처럼, 내가 한다스의 남자를 만나든 한 두름의 남자를 만나든 유희 식의 윤리로 재단되고 싶지는 않았다.

 

 

이 세상의 여자들을 두 부류로 나눌 수 있을지도 모른다. 알록달록 화사한 색깔과 과감한 디자인의 구두를 선뜻 고르는 여자, 그리고, 그 색색의 구두에 동경의 시선을 던지면서도 결국엔 언제나 무채색의 평범한 구두를 선택하는 여자. 나는 후자에 가까웠다. 내 검은 소가죽 구두를 내려다본다. 긍정적인 성격의 사람이라면 무난하다고 평가할 것이고, 부정적인 사람이라면 진부하다고 말할 만한 구두였다. 매장에 전시되어 있던 형형색색의 구두들 가운데 이걸 집어든 이유는 아마도 심리적 안도감을 느꼈기 때문일 것이다. 무난하고 진부한 형식 속에 맨발을 깊숙이 밀어넣으면, ‘진짜 나’를 꽁꽁 은닉할 수 있을 것 같았기에……

 

 

나도 알아요. 남들 눈에는 요상하게 보일 수도 있다는 걸. 어떻게 남자하고 여자하고 그렇게 오랫동안 순수하게 친구로 지낼 수 있느냐고, 헛소리 집어치우라고들 할 거예요. 그런 사람들을 일일이 다 이해시키지는 못하지만 이 세상엔 꼭 집어서 뭐라고 정의할 수 없는 그런 사이도 있거든. 그저 마음을 나누는 사이, 그 사람이 거기 있는 것만으로 의지가 되는 사이, 욕심내지 않는 사이. 그런 관곌 꼭 뭐라고 이름 붙여야 하나?

 

 

밝고 활달한 사람이 세월 속에서 조금씩 지쳐갔을 거야. 가족이 전부인 줄 알고 살아왔는데 자기 자리가 어디인지 점점 더 모르겠다는 소리를 한 적이 있어요.

 

 

가족이 누군가의 희생을 동력 삼아 이루어지는 관계라면, 희생자는 언제나 엄마의 역할이었다. 그렇다면 엄마를 그 안에 꽁꽁 얽매는 것이 나의 역할인가.

 

 

집중하려 애썼지만 마음자리가 한없이 어수선했다. 결혼에 대해 안달하는 여자는 꼴불견이라고 생각해왔다. 철저한 독신주의자도 아니었다. 남들이 다 하는 거라면 언젠가는 나도 하게 되지 않을까, 막연히 짐작했다. 그리고 그때까지 그저 오래 버티고 싶었다. 버티기가 가능할 때까지, 남들 눈에 추해 보이지 않을 시점까지 자유로운 상태를 유예하고 싶었다. 빛보다 빠른 속도로 막다른 길이 닥쳐올 줄을 모르고서……

 

 

결혼은 정신의 약속일뿐더러 육체의 결합이다. 그런데 나의 약혼자는 나와는 다른 견해를 가지고 있는 것 같다.

나는 비교적 키스를 좋아하는 편이다. 키스를 하고 있는 동안, 나 자신에 대해 한층 더 잘 알게 되는 기분이 들기 때문이다. 타인의 혀가 내 입 안을 가득 채우고 있는 순간에야말로 나라는 존재가 태곳적부터 오롯이 혼자였음을 부정할 도리가 없다. 타인의 혀로부터 오는 쾌락의 감각을 느끼고 있으면, 원래의 나는 반쪽의 불완전한 존재에 불과했다는 걸 비로소 깨닫게 되는 것이다.

하루 24시간은 언제나 똑같이 왔다 간다.

내가 머무는 지구가 그런 식의 규칙적인 운동성에 의해 움직이는 별이라는 사실이 새삼 징그러웠다. 김영수도 이 규칙적인 시간의 자장 안에서 눈을 뜨고 이를 닦고 밥을 먹고 하늘을 보며 살고 있을까. 밤에는 잠을 이루지 못했다. 방 안의 불은 다 켠 채 몸을 옹송그리고서 겨우 눈을 붙여보아도, 얕은 잠 속을 헤매다 몇 시간 만에 후딱 깨어나곤 했다. 일주일이 천천히 지났다.

 

 

이 세상 거의 모든 사랑은 해피엔딩 아니면 배드엔딩, 결혼 아니면 이별이다. 그리고 이 세상 거의 모든 결혼에는 사랑이라는 그럴듯한 증거가 필요하다. 서른두 살, 봄. 내 인생에는 절실한 돌파구가 필요했다. 그는 부유하는 먼지처럼 하찮은 나를 가장 튼튼하고 안전한 곳으로 데려가줄 유일한 남자로 보였다. 그에 대한 나의 사랑은 반듯한 세계에 무사히 도착하기 위한 최소한의 알리바이였다. 내 입으로 결혼이라는 말을 뱉은 뒤, 그를 더욱 사랑할 수밖에 없었던 역설이 거기 있었다.

 

 

살아가는 일을 너무 만만하게 생각했다. 그리하여 나는 지금 생에게 잔인하게 복수당하고 있었다. 내가 지금 불행하다면, 배신감과 혼란에 진저리치고 있다면, 그건 그의 거짓말 때문이 아니다. 마지막으로 기댔던 아주 견고한 무엇인가가 별안간 흔적도 없이 스르르 녹아내렸기 때문이다.

 

 

이 세상의 틈과 틈 사이를 요령껏 요리조리 피해 다니면 아무것도 책임지지 않아도 되는 줄 알았어요. 어른이 되는 시간, 내 인생에 온전히 책임져야 하는 시간을 최대한 뒤로 미룰 수 있을 줄 알았어요.

하지만 한편으론 두령무을 버릴 수가 없어썽요. 이러다 까딱 잘못하면 영원히 뭍으로 올라가지 못하는게 아닐까. 다들 땅 위에 튼튼한 뿌리를 내리고 사는데 나 혼자만 물속에서 뻐끔거리며 늙어가는게 아닐까. 늙은 인어공주, 늙은 피터 팬이라니…… 상상만으로도 끔찍하잖아요.

도망치고도 싶고, 안주하고도 싶었어요. 외롭기도 싫고, 책임지기도 싫었어요. 나는 늘 그 두 갈래 길 앞에서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어정쩡한 폼만 잡으며 살아온 것 같아요.

그때 영수씨를 만났어요. 영수씨를 좋아하지 않았던 건 결코 아니에요. 그러나 어쩌면, 영수씨의 단단한 허리를 꼭 붙잡고서 짜잔! 물위로 멋지게 부상하고 싶다는 바람이 더 컸는지도 몰라요.

지금 생각하면, 참 이상해요. 내 성장을 왜, 제도에 끼워 맞추려고 했을까요? 물 밖으로 나간다고 해서 어른이 되는 것도 아니고, 물 속을 떠돈다고 해서 어른 되기를 멈출 수 있는 것도 아닌데.

내가 진짜로 원하는 게 뭔지 아직도 잘 모르겠어요. 열심히 두리번거리다 보면 언젠가는 찾아지겠죠. 뭐, 못 찾아도 할 수 없고요.

영수씨, 따뜻한 사람이에요. 그건 누가 뭐래도 ‘김영수’가 아니라 영수씨가 가진 품성이라는 말, 꼭 해주고 싶어요. 그리고 ‘김영수’에게 너무 짓눌리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솔직히 나도 가끔씩 내가 ‘오은수’를 흉내내며 사는 건 아닐까 궁금해요. 내 이름이 오은수가 맞는지, 내 이름과 진짜 나 사이에 뭐가 있는지…… ;-)

 

 

안녕, 이라는 작별 인사 대신 윙크를 보냈다.

그를 위한 것이 아니라, 나를 위한 것이었다.

 

 

내 곁에 다가왔다 떠난 이들이 나에게서 무엇을 읽고 갔는지 나는 알지 못한다. 내가 아는 건 단 한 가지. 그들이 기억하고 있을 그 어떤 나의 얼굴도 오롯한 오은수는 아니라는 것. 완전한 오은수는 어디에도 존재하지 않는다. 그러나 지금 여기, 맵고 달콤하고 뜨겁고 말캉한 떡을 묵묵히 씹어 삼키고 있는 나의 심장은 1초에 한 번씩 진지하게 뛰고 있다.

 

 

서른두 살. 가진 것도 없고, 이룬 것도 없다. 나를 죽도록 사랑하는 사람도 없고, 내가 죽도록 사라앟는 사람도 없다. 우울한 자유일까, 자유로운 우울일까. 나, 다시 시작할 수 있을까, 무엇이든?

 

 

빗속은 생각보다 아늑하다. 아무렇지도 않은 척, 팔을 앞뒤로 흔들며 걷는다. 버스 정류장에서 발을 멈춘다. 저녁의 정거장, 길들은 여러 갈래로 뻗어 있다. 어느 쪽으로 가야 할지 아무도 가르쳐주지 않는다. 다만 가장 먼저 도착하는 버스에 무작정 올라타지는 않을 것이다. 두 손을 공중으로 내밀어본다. 손바닥에 고인 투명한 빗물을 입술에 가져다 댄다.

아무것도 느껴지지 않는다. 서울의 맛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