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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학아카데미] 정조, 노총각·노처녀 혼인프로젝트를 추진하다!

forget-me-not 2018. 1. 29. 12:26

 

 

 

4.19(수) 찾아가는 한국학 아카데미 2017

정조, 노총각.노처녀 혼인프로젝트를 추진하다! - 한국학중앙연구원 강문종 책임연구원

 

 

 

교육부에서 한국학 프로그램을 짜서 점심시간을 활용한 직장교육을 진행했는데 정말 알찼다.

점심시간이므로 간단히 식사할 거리도 주고 ^^

 

 

 

10.25(수) 그림으로 보는 조선시대의 음악문화도 듣긴 들었었는데

개인적으로는 '정조, 노총각·노처녀 혼인프로젝트를 추진하다!'가 훨씬 재미있었다.

 


열정적으로 강의를 해주신 한국학중앙연구원 강문종

책임연구원

 

 

(18세기말 서울의 일상)

하루에 두끼 먹을 정도면 1처 1첩

→ 조선 대부분 남성들은 1처 1첩 이상을 당연하게 생각하고 있음

→ 사실상의 일부다처제에 대한 양반들의 자기고백

여자 공유(?)

 

하지만 성의 결정권을 여자가 소유했다는 평도..

당시 이혼사유에 부인이 남편이 부부관계에 응하지 않는다고 이혼을 요청하기도..

 

1781년에는 남자 18, 여 21살부터 노처녀로 간주했다고 하는데..

28세의 김희집..

너 왜 못했니 이 정도가 아니라 "우환이로다 우환이로다"로 표현

남(16~30), 여(16~20) 반드시 결혼해야 한다는 생각이 있었나보다.

 

경국대전 예율조에는

30대 이상 여성이 특별한 이유가 없이 결혼을 하지 않으면 부모 처벌

 

실제 사례는 아니지만 개인의 문제가 아니라 국가의 문제로 인식했다고 볼 수 있다.

난 35살에 결혼했으니 ㅋ

 

 

(3가지 어려움)

정치적 지원 세력이 없는 무반의 첫 벼슬살이

가난한 선비 과거에 지원

가난한 처녀 시집가기

→ 사회적 부조리와 경제적 빈곤, 무인 차별 굉장히 심함

 

(4가지 기쁨)

가뭄의 단비

타향에서 오래된 친구 만남

결혼 첫날밤의 즐거움

어린 나이에 과거급제

 

정조 때에는 인플레이션이 심해서 양반이라해도 결혼비용이 만만치 않았다.

3000냥짜리(기와집 10채) 혼인도 등장하는 등 과소비 문제도 발생했다고..

예나 지금이나 결혼비용은 문제였나봄

 

 

이혼이 일반화되었고, 결혼도 잘 못하고..

 

난리가 난 서울시 공무원들!

정조가 비상회의를 여는데~

기존 경제적 지원에서 혼인을 주관하는 것으로 변경!

보통 사람 결혼을 국가가 주관하는 것이었으니 실로 놀랍지 아니한가

 

주례도 장차관급이.. ㅋ

가마, 말도 렌탈 가능하고

 

 

음식은 국가 최고 요리사 5명이~

 

혼례물품, 신혼방 물목이 나열되어 있는데

일본에서 수입한 뭐, 러시아에서 수입한 뭐 → 그 당시에도 수입품(외제) 많이 썼나봄 ^^;

 

아무튼 엄청난 지원과 협찬을~

그 이면에는 민심을 다독여야 할 무엇이 있지 않았을까

 

 

 

어찌되었든간에 정조, 혼인이벤트 대성공!

 

승정원일기, 목민심서 등등

저자거리 소문 → 민간에서 노래 <노처녀가> 엄청 유행, 출판까지 됨

 

(노처녀가)

결혼하면서 스트레스 풀린다는 내용인데

결혼 전날 자랑이 너무 하고 싶어서

화장실에 개 한마리한테 자랑자랑

나 내일 시집간다, 좋은데~

내가 내일 시집을 안가면 너 개자식이다.. 뭐 이런 내용이란다

 

 

예나 지금이나 결혼은.. ㅎ